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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림책 거침없이 세계로 전진 (한겨레 기사)

by 상상_박스 2010. 12. 1.


  » 2004년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 상’을 받은 그림책 <지하철은 달려온다>(초방책방).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한국 그림책이 세계로 도약하고 있다. 우리 그림책이 태동 20년 만에 세계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 아동도서전 수상이 잇따르고, 수출도 크게 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12~16일 개최된 서울국제도서전에선 ‘우리는 왜 한국 아동도서를 선택하는가’ 주제의 세미나가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 이스라엘 4개국 편집자의 주제발표로 12일 열렸다.


 » (위) 이수지씨의 그림책 <동물원>. 비룡소 제공.
   (아래)한국 그림책 ‘라가치상’ 수상작들

■ 도약하는 한국 그림책 세미나의 주제 발표자인 바오밥아동출판기금의 소냐 마테존 대표는 한국 그림책이 내용과 스타일 양면에서 높은 질을 갖추었으며, 전통과 현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녹여 한지 그림 같은 전통기법에서 현대적 실험적 기법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그림책을 내놓고 있다고 평가했다. 바오밥아동출판기금은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 다문화 출판기구다. 그림책 강국 프랑스의 그림책출판사 뤼뒤몽드의 대표 알랭 세르는 “한국 그림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어 프랑스와 한국이 세계적으로 그림책이 발전한 두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02년 류재수씨의 <노란 우산>이 미국 <뉴욕타임스> 올해의 그림책에 선정된 일이 우리 그림책 역사에 하나의 사건으로 다가왔다면, 이제 우리 작가들의 국외 수상 소식은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올 3월 말 열린 제47회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는 한국 그림책 <돌로 지은 절 석굴암>이 라가치상 픽션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2004년 <팥죽할멈과 호랑이>, <지하철은 달려온다>가 처음 상을 받은 이래 한국 그림책으론 다섯 번째 라가치 상 수상이다. 작가들도 ‘볼로냐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해마다 단골로 선정되어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한국은 2009년 그림책 판권 거래의 최대 산실이라 할 볼로냐아동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초청되면서 세계 시장으로 파고들 도약대를 마련했다. 씨제이(CJ)문화재단이 서울에서 개최하는 국제 그림책작가 발굴·출판지원 행사인 ‘씨제이그림책 상’도 세계의 작가들이 이름을 올리기를 선망하는 마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선정 작가

■ 커지는 국내시장, 늘어나는 그림책 수출 국내 그림책 시장은 전국 교보문고 집계를 보면 2005년에 견줘 2009년 발행 권수로는 197%, 판매액 기준으로 211%가 증가했다. 5년 만에 시장이 두 배로 커진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으면서 수출 계약도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은 2003년부터 볼로냐도서전에 한국관을 차려 참가했는데, 통계 집계가 시작된 사실상 첫해인 2006년엔 12개 출판사가 참가해 저작권 수출 거래(상담) 건수가 295건에 300만달러(추정치)였으나 2007년엔 345건에 390여만달러(16개사), 2008년엔 335건 395만여달러(15개사)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받은 지난해엔 35개사가 참가하여 수출거래액이 712만달러(612건)로 치솟았다.

■ 새로운 작가군의 탄생 한국 그림책의 도약을 떠받치는 건 ‘그림 자체로 이야기(서사)를 구사할 줄 아는’ 작가군의 등장이다. 류재수·홍성찬·이호백·이억배·권윤덕·정승각·한병호·김동성씨 등 한국 그림책의 성장을 일궈온 1세대 대표 작가(화가)들은 크게 보아 196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붐세대 혹은 386 작가군으로 뭉뚱그려진다. 1세대 작가들은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90년대 들어 국외 여행과 국제도서전 참가를 경험하고 국내에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 그림책을 접하며 창작그림책 장르를 새로이 만들고 발전시켜 왔다.

이들이 빚어놓은 시장을 발판으로 새 세대 젊은 작가들의 활동이 최근 3~4년 사이에 만개하고 있다. 이들은 70~80년대에 태어나 국제무대에 겁 없이 도전하는 ‘새 감성’의 작가군이다. 이들은 출판 기회를 잡기 위해 직접 국제도서전에 뛰어들어 유럽·미국 등의 출판사를 통해 데뷔한다. 2003년 스위스에서 출간된 <토끼들의 복수>로 볼로냐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고 2008년 미국에서 출간된 <파도야 놀자>로 <뉴욕타임스> 우수그림책에 선정된 이수지(34)씨가 대표적 사례다.


 

  » 올해 볼로냐도서전 라가치상 수상작
  <돌로 지은 절 석굴암>.웅진주니어 제공

그림책평론가 전동휘(CJ문화재단 문화공헌팀장)씨는 젊은 작가들을 “활동무대를 국내에 한정하지 않고 해외에서도 사랑받기를 원하며 외국 작가와의 경쟁에 두려움을 모르는 세대”라고 평했다. 한국 그림책의 미래를 그려나갈 젊은 작가들로는 고경숙·신동준·이수지·백희나·박연철·이소연·김나경씨 등이 꼽힌다. 선배 작가들의 활동이 책 출간이라는 전통 방식에 그 창구가 한정됐다면, 젊은 그림책작가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기 그림을 적극 홍보한다. 2천여명의 신예 및 예비 작가들의 인터넷 사이트인 ‘산그림’은 다양한 빛깔의 그림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대학 회화·응용미술학과 외에도 ‘그림책사관학교’로 자리매김한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 출판단체 그림교실 등을 통해 폭넓게 배출되고 있다.


 


■ 한국 그림책 ‘대가’를 키워라 한국 그림책은 90년대 중반 이후 전래동화 등을 소재로 한 한국적 지역성을 드러내는 그림책이 두드러졌으나,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한국적인 것을 넘어 아시아적인 것을 드러내며 세계 시장에서 소통되고 있다. 그 자신 한국 그림책 간판 작가인 그림책 출판사 재미마주 대표 이호백씨는 “70~80년대에 일본이 그림책 대가들을 배출하며 이 역할을 했는데, 일본이 르네상스기를 지나 매너리즘 시대로 접어든 지금, 한국이 그간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바로크에서 현대 미술까지, 매너리즘에서 과감한 실험까지 한 시대에 다채로운 양식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 풍토가 새 작가 발굴보다는 검증된 유명 작가들에 편중돼 있어 그림책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내 출판 길을 찾지 못한 젊은 작가들이 외국 출판사에 직접 도전하다 보니 이들이 국외 출판한 책을 비싼 판권료를 주고 다시 사오는 상황도 생기고 있다. 이호백씨는 “긴 안목으로 작가에 투자하고 그 이름 가치를 키울 때 한국적인 것을 넘어 보편적 감수성에 호소하는 세계적 작가가 배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 프랑스 출판사 관계자 2명 인터뷰

“다양한 시도 흥미…보편적 주제 아쉬워”


 » 에블린 마티오, 알랭 세르.

국외에 소개되는 한국 그림책의 60% 가까이가 프랑스에서 수입되고 40%가량이 스페인어, 독어, 영어권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한국 그림책 붐은 권위 있는 어린이책 잡지 <어린이책 리뷰>가 올 6월호에 한국 그림책 특집을 싣는 데서도 드러난다.

12일 서울국제도서전 주빈국인 프랑스 주빈국관에서 만난 그림책 출판사 ‘뤼뒤몽드’의 대표 알랭 세르(오른쪽)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그림책의 비약적 발전이 두드러진다며 2009년 볼로냐도서전을 계기로 세계 시장에 강한 인상을 심었다고 말했다. 그림책 등 20여권의 어린이 책을 낸 작가인 그는 프랑스에서 한국 그림책 수입은 이제 막 시작단계라며 ‘플라마리옹’이라는 출판사에는 한국 책만 내는 부서도 생겼다고 전했다.

또다른 어린이책 출판사인 ‘나탕’의 해외저작권 국장인 에블린 마티오(왼쪽)는 “3~4년 전쯤부터 프랑스에서 한국 그림책을 구매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그림책이 사려 깊게 만들어져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며 지금 지닌 스타일을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프랑스는 오랜 그림책 역사를 자랑하는 그림책 최대 강국이다. 세르 대표는 “프랑스가 한국 책에 관심이 높은 것은 워낙 어린이 그림책이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이라며 프랑스 그림책은 1950년대에 문학적 가치가 있는 그림책이 생겨나기 시작해 30년 만인 1980~90년대에 폭발적으로 시장이 확장됐다고 말했다.

그는 긴 세월 발전해온 프랑스 그림책이 완숙기에 있다면 한국은 젊은 작가들이 많아서인지 다양한 시도를 하며 방향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그는 한국 그림책이 스타일과 그래픽에서 대단히 흥미로운데 전반적으로 내용이 굉장히 한국적인 느낌을 준다며 세계 독자들을 폭넓게 사로잡으려면 좀더 보편적인 주제의 그림책을 더 많이 만들 것을 주문했다. 

글·사진 허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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